지난 포스팅에서 Rhys와 카이세리 공항에서 수다를 떤 저녁과 이스탄불에 도착한 밤은 같은 날이다.
이번 여행에서 평탄치 않았던 몇개의 썰 중 하나가 바로 이날 일어났는데,
카파도키아에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우선 Turkish Airlines의 연착.
출국하기 전에 회사 선배가 우스갯소리로 거기 연착 많다던데~라고 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Turkish Airlines를 이용했던 두번 다 한시간~한시간 반의 연착이 있었다.
Kayseri 공항에서 40분 연착이 되어 Rhys와 수다는 더 떨었지만,
갑자기 공항 안내 전광판에 gate closed라는 안내가 떠 비행기를 놓친 줄 알고 패닉했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탑승도 안 했고, 옆에서 패닉하던 다른 남자애 두명은 오히려 나한테 비행기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더라.
비행기 타고도 출발이 한참 늦어져 공항 셔틀버스가 날 버리고 갈까 걱정했었더랬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내가 묵었던 Cheers Hostel로 들어갈 때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klook이라는 글로벌 셔틀버스 플랫폼을 사용했다.
그런데.. 내가 한명이라 그런지 한시간 정도 오히려 셔틀버스를 기다려버렸다.
아무래도 나랑 같이 타고갈 사람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서 비행기 연착과 오지 않는 셔틀버스로 짜증이 난 상태에서 나를 데리러 온 셔틀버스에 놀랐다.
부모님이 아시면 등짝 맞을 이야기지만,
새벽 네시 경 셔틀을 혼자타게 되었는데, 정말 럭셔리한 셔틀밴에 티비도 있고, 앞에 운전석과 벽으로 분리되어 있고, 썬팅이 되어 살짝 혼자 타기 무서웠다.
나는 대처능력이 굉장히 없는 편인데, 그 상황에서는 헐 조금 무서운데.. 어떡하지..? 하면서 셔틀을 타버렸다.
이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밴을 안 탔을 것 같다.
한시간 가량 밴을 타고 호스텔로 가는데, 납치되는거 아닌가 무서워서 동생한테도 계속 사진이랑 위치를 보내고 구글맵으로 내 위치와 호스텔로의 경로를 확인했다.
다행이도 새벽 네시 경 호스텔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숙면을 취했다.
그러고 본격적으로 이스탄불에서의 첫날.
일어나서 호스텔의 조식을 먹으며 이스탄불에서의 첫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호주에서 온 Odyssee.
프랑스계의 호주인인데, 이름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그녀는 굉장히 힙한 스타일로 한쪽팔은 인도식 타투 문양을 연상시키는 타투가 팔부터 손가락까지 가득차있었다.
Ody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는 이스탄불의 역사와 모스크가 있는 old town 올드타운으로 나갔다.
일정을 바꿔 카파도키아에서의 우천은 피했지만, 이스탄불은 이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피 궁전 같은 주요 관광지를 날씨 좋은 출국 마지막 날에 가야하나 고민도 했지만,
숙제?를 남기는 기분이 싫고, 주요한 곳들은 우선 둘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리는 비를 피할 만한 지하궁전으로 먼저 갔다.
그런데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지하궁전을 기다리는 줄이 꽤나 길었다.
이 줄에서는 motorbike(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폴란드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이스탄불에 하루만 머물 예정으로 비가 오든 말든 이날 아야소피아와 모든 것을 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여자애의 아버지가 motorbike 오토바이 여행을 하다 이스탄불에서 사고를 당해 오토바이를 이스탄불에 맡겨 여자애한테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를 계기로 이 폴란드 커플은 폴란드부터 터키까지 오토바이 여행을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오토바이 여행이라는 개념을 이 때 처음 접했는데, 후에 알게된 것은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기있는 여행 스타일이었다.
나는 우스갯 소리로 여자애에게, "너희 아버지가 너한테 그런거 시키면 돈을 좀 주셔야겠는데?" 라고 했더니,
여자애가 말하길, "당연하지! 이 여행 전체를 아버지가 대주셔. 왜냐하면 이스탄불에서 폴란드까지 오토바이를 배송시키는 것 보다 그게 더 싸거든."
재밌는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아시아 라오스에서 motorbike trip을 하는게 꿈이라고.
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줄이 금방 줄어 지하궁전에 들어갔다.
6세기 비잔틴 제국 때 만들어진 지하궁전은 사실 궁전은 아니고,
이전에 이스탄불 전체에 물을 공급하던 지하 물 저장소였다.
안에는 이런 조각들도 있고, 조명도 계속 바뀌어 예쁘다.
지하궁전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근처에는 큰 광장과 음식점들이 즐비한데, 이 중 사람들이 꽤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서 먹었던 음식의 이름은, lamb shish라는 종류의 케밥이었던 것 같다.
양고기를 꼬치에 구운 요리로 옆에 곁들여 나온 소스는 매운 고추 페이스트였다.
평소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저 빵과 육즙 가득한 양고기꼬치와 터키 전통 요거트 음료 아이란은 완벽한 조합이었다.
로컬도 꽤 많았고, 무엇보다 이 식당에서 카파도키아 로즈밸리에서 만났던 혼자 여행하는 한국남자분을 다시 만났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동기도 큰데,
그래서 한국사람들과는 보통 가볍게 인사만 하고 즐거운 여행에 대한 wish만 전하고 헤어진다.
이 분도 그러했다.
그래도 같은 사람을 두번이나 마주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인연이다.
식사를 하고는 근처의 톱카피 궁전으로 갔다.
이스탄불 뮤지엄 패스를 살까 고민하다, 나는 뮤지엄 보다는 거리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개별 입장권을 구매했다.
톱카피 궁전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으로 명성을 떨쳤던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거주하던 궁전인데,
입장권은 750 리라로, 한화 37000-38000원 정도 된다.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도 이정도 입장료는 안 받는데 말이다.
그래도 처음 이스탄불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궁전은 추천한다.
규모도 크고 볼 것도 많아 나는 여기에 3시간이 넘게 머물렀다.
터키는 무슬림 국가로, 궁전에 하렘이라는 장소가 존재한다.
하렘은 궁전 내 여성들이 지내는 공간으로, 어떤 궁전이든 하렘은 내가 가장 아름답게 생각했던 장소였다.
내가 어디가 어딘지 기억하면 좋으련만, 아름다웠던 시각적인 기억만 나는 갖고가련다.
하렘은 궁전 내 여성들이 사용하던 공간인데, 타일의 색상이나 모양이 더 온화하고 섬세해서 방문했던 이슬람 궁전들에서 나는 하렘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였다.
특히 욕조와 큰 화장실이 너무 예뻐서, 거기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삶과 모습을 상상해보게 됐었다.
내가 만약 오스만제국의 공주였다면?
이런 상상 ㅋㅋ
이스탄불은 항구도시여서 몇몇 모스크와 궁전에서는 이렇게 도시와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점이 특별했다.
터키에 가기 전, 도서관에서 터키 책을 두권 빌려서 보았는데,
꼭 방문해야하는 리스트에 있었던 곳들은 ~ 뮤지엄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구글맵에 찾아보니 없는 곳들이 꽤 있었다.
알고 보니, 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입장료를 받던 곳들은 모두 무슬림 모스크로 바꾸어 모든 민간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원하는 무슬림들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된 것이었다.
아야소피아도 이전에는 박물관이 있었으나, 무료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입장료를 받았더라면,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을텐데, 유명한 모스크들을 무료로 개방한 터키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모든 모스크에는 방문객이더라도 히잡을 써야한다.
아야소피아에서 20리라 (1000원 정도)에 산 일회용 히잡은 터키 여행 내내 요긴하게 사용했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보고 호스텔로 돌아가기 전 거리를 걷다 만난 Bazaar이 있었다.
Bazaar은 일종의 시장 같은 개념인데, 터키뿐 아니라 후에 여행한 그리스에도 꽤 있었다.
보통은 market으로 부르는데, 이 문화권에서는 야외 상인들이 모인 market 보다는 상점들이 모여있는 bazaar의 개념이 더 익숙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걷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Ody랑 저녁을 먹을까 했는데, 잠시 들른 호스텔 방에서 다른 호주 친구인 Eloise를 만났다.
그녀는 이번 여행 중 만난 몇몇 친절한 사람 중 한명인데, 나랑 대화를 시작한지 3분이나 지났을까,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갈 계획이라고 같이 가겠냐고 했다.
로비로 내려가니, 내가 오늘 호스텔에서 벌써 이야기를 나눈 두 친구가 있었다.
Ody와 독일친구 Chris 한명.
독일친구는 여행 중 만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친구 중 한명이었는데, 이 친구와는 식당 가는 길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친구도 특별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친구였는데, 우선 나이가 35살인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독일에서 정치,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학사 학위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사무실에서의 삶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목수 일을 4년동안 배워서 지금은 목재가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독일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늦게라도 전혀 다른 길을 찾아가서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게 멋있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 부러웠다.
또 이 친구는 여행하며 만난 '책 읽는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일주일 간의 휴가 동안 이스탄불에만 머물며, 주요한 관광지는 여유롭게 둘러보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는데 사용했는데, 이 친구의 여행과 휴식의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 친구 이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Natalie, 영국 런던에서 온 Jules, 뉴질랜드에서 온 Jack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까지 걸어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멀었다.
올드타운에 위치한 호스텔부터 갈라타 다리를 건너 신도시인 카다쿄이까지 지역까지 갔으니,
못해도 40분은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간 식당은 터키식 라비올리라고 부르는 manti 만두를 파는 식당.
솔직히 그렇게 맛있진 않았다.
칠리와 사워크림을 섞은 듯한 소스에, 고기 맛이 거의 나지 않는 터키식 만두였는데, 경험으로 한 번 쯤 먹어볼 만했다.
내 앞에 앉았던 Jules는 22살로 어린 영국 런던 출신 친구인데, 바텐더 일을 한다고 한다.
굉장히 힙한 스타일로 왠지 일본 스트릿 패션을 하고 있었다.
성격도 엄청 chill하고 내가 본 영국인 중 가장 말을 천천히 해서 알아듣기 너무 편했다.
저 음식이랑 차를 시켜서 내가 "Having your daily dose of tea? (오늘치 할당량인 차를 마시는거야?)" 라고 놀렸다.
영국인들이 차를 좋아하는데서 비롯된 농담이었다 ㅋㅋ
터키는 무슬림 국가이기 때문에, 많은 식당에서 술을 팔지 않는데, 여기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두번째로는 올드타운 쪽의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우리가 갔던 바에서 나는 미국에서 온 Natalie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녀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inspiration을 크게 준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그녀는 나와 동갑으로 지금 2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웨딩 관련 업체인데, 사진촬영부터 야외 예식장 셋업 등 웨딩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
원래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코로나로 어려워지며 자기만의 회사를 만들게 되었단다.
굉장히 personal한 이야기였지만, 너무 흥미로웠고,
그녀가 회사의 대표로서 일을 4가지 없는 사원과 일을 못해도 성실한 사원 중 어떤 사람을 선호하는지 등 궁금한 질문들을 계속 하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또 나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부럽다고도 했다.
내가 아무리 일을 해도 나는 '내 것'을 하는게 아니라 '다른 이의 것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나에게 즐길만한 취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일에서 나는 의미를 찾고 싶고, 그녀가 성취한 것이 정말 대단하고 나도 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것에 의미를 두었고,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우리 나이대의 여행자들은 연락처 잘 교환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아 기뻤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I would love to see your business prosper. (네 사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좋겠어.)"
우리 일행은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호스텔 루프탑 바에서 술을 조금 더 마시고 잠에 들었다.
여행하면서 사람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스탄불 올드타운의 Cheers Hostel에서는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여기까지가 여행 3일째의 이야기였다.
4일째는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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