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낄라와 우조 ouzo 샷을 많이 마신 나는
그만 아테네로 가는 7시 30분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일어나니 9시 30분이었다.
완전 멘붕이었다.
아테네에 머무는 3일 중 하루는 Delphi라는 신탁의 도시에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산토리니에 하루 더 머물게 된다면 Delphi는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날 밤 9시쯤 아테네로 넘어가는 비행기와 다음날 아침 7시 30분 비행기가 있었다.
일단 나는 체크아웃을 하고 어제 놀았던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나 비행기 놓쳤어, 오늘 놀 사람?"
John이 Akrotiri, 레드비치가 있는 곳에 있다고, 곧 Red beach에 갔다가, 크루즈 투어에 갈 거라고 했다.
전날 레드비치에 가긴 했지만,
사실상 산토리니는 휴양지라서 더 보고 싶은 곳도 특별히 없었고,
이번 여행에 물에는 안 들어가서 비키니를 갖고 레드비치로 다시 향했다.
나는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드비치 뒤에서 4유로 짜리 샌드위치와 호주에서 먹곤 하던 스웨덴 사이다 (달달한 스파클링 술) 발견해서 샀다.
John이 친절하게도 내 물 1리터와 화이트와인 한 병을 사서 나눠 마셨다.
그래서 썬베드는 2개는 내가 지불했다.
썬베드에 누워서 해도 즐기고 수영도 하는데, 너무 행복했다.
비행기 놓친거 나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친놈이다.
John은 수영을 일주일 전까지 못했는데, 여행하면서 만난 호주 라이프가드가 가르쳐줬다고 했다.
그런데 바다수영을 나보다 잘한다.
나는 수영 배웠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John이 personal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불우한 가정에서 할머니와 자랐다는 이야기.
할머니는 본인이 공부를 하지 않고 할머니를 부양하길 원했다는 이야기.
불우하게 함께 자란 누나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9년을 함께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주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공부해서 미국에서 변호사까지 되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John은 나와 다른 호스텔에 묵고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인도계 영국인 불교 친구가 크루즈 투어를 좋은 딜에 얻어서 같이 가겠냐고 했다.
이때까지도 이날 밤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갈 것인지, 다음날 비행기를 탈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친구의 "그냥 크루즈 투어 갔다가 내일 가는건 어때? 어차피 밤에 아테네로 넘어가도 할 것도 없잖아." 라는 말 한마디에 크루즈 투어로 향한다.
이런 즉흥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사실 비행기를 안 샀던 거였다.
원래는 120유로짜리 크루즈 투어였는데, 인도계 영국인 친구 Valentina 가 네고를 해서 60유로에 탈 수 있었다.
John이 말하기를 크루즈의 선장이 Valentina에게 빠진 것 같단다.
그녀는 게이인데 말이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진짜 힙한 사람이었다. 코에 피어싱이 두개나 있고, 스타일도 엄청 힙하고.
방글라데시에서 나고 영국에서 자란 그녀는 굉장히 특별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듣는 음악도 영국의 마이너한 인디장르였는데, 그녀의 아이덴티티는 굉장히 유니크했다.
거기에 그녀의 런던 포시 액센트까지!
그녀가 함께 온 친구는 브라질의 Gustavo.
그 역시 게이로 여행을 좋아한다. 2년 정도 호스텔 일을 도우며 여행하는 중.
너무너무 웃긴 친구였다.
이들은 모두 연령대가 32~26여서 나를 어리다고 여기고 돌봐주었다?
크루즈 투어는 사실 요트에서 6시간 정도 투어를 하는 것으로 중간중간 요트를 멈추고 수영하고 유명한 절벽 등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에 들어가서 수영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는데
Valentina와 나는 멀미로 고생했다.
솔직히 나는 숙취도 있었던 것 같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요트에서 와인과 과일을 나눠줬다.
터키와 그리스 여행하며 호박 같이 생긴 과일이 뭘까 궁금했었는데,
여기서 먹어보았다. 정체는 멜론 종류였다.
화산섬 산토리니의 절경도 볼 수 있었다.
크루즈투어를 하며 John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가치관과 life style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취미로 구리판에 acid를 뿌려 만드는 art work과, 정원에서 기르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취미도 있구나, 배웠다.
Valentinia도 재밌는 취미를 갖고 있는데 그녀는 인도춤과 노래, 공연을 즐겨한다.
또한 세라믹, 즉 도자기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녀의 직업은 놀랍게도 한국인이 많이 사는 런던지역의 학교 과학선생님이다.
John과 Valentina는 모두 한국음식과 문화를 많이 알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며, 한국 영화, 음식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터키에서 처음에 길을 알려줬던 로컬 터키인도, 마지막 호스텔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친구도
올드보이, 기생충, 마녀와 같은 딥한 한국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John과 Valentina에게,
"나는 여행하다보니 '김치'라는 한국음식이 좀 그리워."
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너 내가 설마 김치를 모를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라는 반응이었다.
친구들과 하루종일 같이 있다보니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정말 가까워졌다.
크루즈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피라 다운타운 쪽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끌고 온 John은 먼저 가고,
나, Valentina, Gustavo는 한시간에 한 대씩 오는 셔틀버스를 타러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크루즈에 있었던 커플들이 우리를 차에 태워주었다.
Gustavo가 알고보니 큰소로
"쟤네가 우리 태워주면 좋겠다!!!"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ㅋㅋ
이 커플들은 독일남자-케냐여자 커플이었는데, 피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무해하고 순수한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 남자는 본인들이 독일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또 우리는 조그만 차 안에 세계가 다 있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했다.
1) 아시아 방글라데시 출신 유럽의 영국인
2) 남아메리카 브라질리언
3) 동아시아 한국인
4) 유럽 독일인
5) 아프리카 케냐인
여행은 이게 참 재밌다.
서로가 어디서 왔는지도, 피부색도 상관 않고 웃고 떠들다 문득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두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게 새삼 재밌다.
그렇게 독일, 케냐 친구들이 우리를 내 호스텔 앞에 내려주었다.
John, Valentina, Gustavo는 모두 같은 호스텔이어서 이 날 나는 이 호스텔로 가서 자기로 했다.
짐을 바리바리 끌고 호스텔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멀었다.
얼마나 멀었는지,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Gustavo가 Mythos라는 맥주를 사서 하나씩 까먹으면서 갔다.
Caveland라는 호스텔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이곳 근처에 친구들이 봐둔 괜찮은 그리스 전통 로컬 식당이 있다고 해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네명이어서 여러 dish를 시켜 나눠 먹었는데,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다.
여행 중 먹은 최고의 식사였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특히 Valentina가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키우지 못한 사정,
방글라데시에서 4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가야만 했던 이야기까지.
John은 이 이야기를 듣고
"Thanks for sharing." 이라고 했다.
맨날 보는 친구 보다도 어떨 때에는 여행에서 만난 stranger에게 마음을 더 열어놓게 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큰 그녀임에도, 그녀는 아직 사람들에게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한 말 중 가장 생각나는 것이 있다.
"It is beautiful how much love people have for each other. How much people can give and receive from each other."
이 말은 여행이 끝난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결국 산다는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로 그 행복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과 지위이 아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것을 순수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공유할 수 있는 행복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거의 자정이 되었다.
그런데 John이 바에 갔다가 클럽에 가자고 제안한다.
나는 항상 yes다.
Valentina는 갈까 말까 고민하더니 함께 나섰고 Gustavo는 호스텔에서 일하는데, 다음날 조식을 만들어야 해서 일찍 잠에 들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John, Valentina도 알람을 맞췄다.
"It takes a village" 라나 뭐라나. (영어 표현으로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우버를 타고 피라로 나갔다.
그렇게 전망 좋은 바와 클럽 두개를 갔다.. 우리는 클럽이 닫을 때까지 놀았다. (네시 반..)
칵테일 바에서는 바텐더가 자기가 개발 중인 칵테일을 만들어 줬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spicy 한 드링크를 마셔봤다.
한 칵테일 이름은 Volcano 였는데, 진짜 고추가루가 들어있고, 핫소스 맛이 났다.
그런데 묘하게 맛있었다.
아니 35, 36살이 체력이 엄청나다.
아침에 나는 또 못 일어날 뻔 했지만, John 아버지가 깨워줬다.
내가 짐을 싸고 나오는데 John, Valentina 모두 잠을 푹 주무시고 계셔서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그런데 Caveland에서 셔틀버스 정류장 가는 길을 찾기 어려워 나는 아무 수퍼마켓에 들어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고 무사히 아테네로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까지 파란만장한 산토리니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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